전기차로 반전한 12년의 실패
일본 땅에 다시 선 현대차
작지만 강한 ‘인스터’의 질주
현대자동차가 12년 전 쓴맛을 봤던 일본 시장에서 드디어 반전에 성공했다.
과거 내연기관차의 실패를 딛고, 전기차라는 새로운 무기를 앞세워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핵심은 소형 전기 SUV ‘인스터’다. 이 차량은 성능과 가격, 현지화 전략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춰 다시 한 번 ‘현대차’라는 이름을 도로 위에 새겼다.
아이오닉도 넥쏘도 아닌 ‘인스터’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 다시 진출한 것은 2022년이다. 과거 내연기관 차량으로 철수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면적인 전략 수정을 감행했다.
아이오닉 5와 수소전기차 넥쏘를 통해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했고 판매 방식도 대폭 바꿨다. 소비자는 차량 검색부터 결제, 배송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현지 적응도 주효했다. 교토의 MK택시에 아이오닉 5 50대를 공급하고 야쿠시마 교통에는 전기버스 5대를 납품하며 발을 넓혔다.
이같은 접근은 결과로 이어졌다. 2024년 기준 일본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607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24.1%의 성장을 기록했다. 반면 닛산은 같은 기간 44%, 미쓰비시는 64% 하락하며 대조를 이뤘다.
일본 시장 맞춤형 ‘작은 전기 SUV’
현대차가 일본에 ‘인스터(한국명: 캐스퍼 일렉트릭)’를 출시한 시점은 지난 4월이다.
일본처럼 좁은 도로와 복잡한 주차 환경을 고려해 소형 전기 SUV를 전면에 내세웠고, 가격은 284만 9000엔(한화 약 2690만 원)으로 닛산 리프, BYD 돌핀보다 저렴하게 책정했다.
주행 성능도 만만치 않다. 1회 충전으로 최대 458㎞까지 주행 가능해 소형 전기차의 고질적 약점으로 꼽히던 주행 거리 불안을 덜어냈다.
일본경제신문은 “좁은 도로에 최적화된 차량으로, 주행 성능과 안전성도 만족스럽다”며 “이 차량을 넘지 못하면 일본 브랜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일본 전자상거래 플랫폼 라쿠텐카와 손잡고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했다.
요코하마 고객센터와 오사카 쇼룸에서 진행한 체험 행사는 누적 시청자 수 6만 명을 넘겼다. 이러한 노력은 실적에서도 드러났다.
5월 한 달간 인스터 판매량은 94대로, 전년 동기 대비 408.7% 증가했고 누적 판매량은 300대를 넘어섰다. 이는 일본 전체 전기차 시장의 0.22%를 차지하는 수치다.
BYD의 등장과 현대차의 대응 전략
현대차의 상승세에 위협이 될 변수도 존재한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가 일본 시장에 2026년경 2,00만 원대의 경형 전기차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일본 내 경쟁 모델인 닛산 사쿠라보다도 낮은 가격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만으로는 일본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평가하면서도, BYD가 가져올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경형 전기차 시장이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는 이에 맞서 ‘작지만 강력한 성능’을 강조하고 있다. 시메기 토시유키 현대모빌리티재팬 사장은 “소형 전기차는 충전이 불편하다는 고정관념을 뒤엎고 싶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올해 일본에서 1500대 판매를 목표로 설정했으며 향후 5년 내 연간 6000대 이상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산차의 무덤’으로 불렸던 일본 시장에서 현대차는 이제 전기차를 앞세워 조용한 반전을 이뤄내고 있다. 12년 전의 실패가 만든 상처는 ‘인스터’의 바퀴 아래에서 조금씩 아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