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색 차량 인기 급부상
외장 컬러가 감가율 좌우
브랜드 개성 경쟁 본격화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유채색 차량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외장 색상이 단순한 취향을 넘어 차량의 자산 가치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무채색 중심으로 수렴되는 반면, 한국은 되레 유채색 비중이 늘어나며 자동차 업계의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완성차 브랜드의 컬러 개발 경쟁과 소비자들의 구매 전략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외장 색상이 중고차 가격을 좌우한다
“같은 차인데 색깔만 다르다고 값이 달랐다”는 소비자의 반응이 더는 낯설지 않다. 자동차 외관 색상이 중고차 시세에 실제 영향을 주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6월 4일, 자동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선루프는 중고차 감가율 방어에 있어 최대 2%의 효과를 보이는 옵션으로 나타났다.
이어 내비게이션, HUD, 차로 이탈 방지 보조 장치 등이 감가율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외장 색상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무광 컬러나 유채색 시그니처 색상이 차량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시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엔카닷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인기 옵션과 색상이 모두 반영된 차량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며 외장 색상이 차량 가치 유지의 전략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채색 일색 깨는 ‘컬러 반란’
글로벌 도료업체 액솔타가 발표한 ‘세계 자동차 인기 색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내 유채색 차량 비율은 2015년 20%에서 올해 24%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평균은 24%에서 16%로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북미,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 시장에서는 무채색 선호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만이 유채색을 향한 수요가 오히려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런 흐름에 발맞춰 개성 있는 색상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9’ 모델에 청잣빛 ‘셀라돈 그레이 메탈릭’과 오로라에서 영감을 받은 ‘이오노스피어 그린 펄’을 도입했다. 기아는 첫 픽업 트럭 모델인 타스만에 ‘탠 베이지’와 ‘데님 블루’를 적용해 디자인의 감각을 강조했다.
브랜드 철학까지 담은 색상 전략
외장 컬러는 단순한 취향의 반영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다.
제네시스는 ‘트롬소 그린’, ‘세레스 블루’, ‘마우나 레드’ 등 자연과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를 꾸준히 출시해왔으며, 지금까지 공개된 제네시스의 고유 외장 색상만 36종에 달한다.
특히 브랜드 10주년을 맞아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선보인 ‘엑스 그란 쿠페’와 ‘엑스 그란 컨버터블’은 각각 ‘올리브 그린’과 ‘버건디 레드’ 색상으로, 고급스러움과 감성적 감각을 동시에 구현해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이처럼 색상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수단이자, 소비자의 선택을 이끄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비자 인식이 바꾼 시장의 흐름
여전히 무채색 계열인 흰색(33%), 회색(26%), 검정(14%)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유채색 역시 점유율을 꾸준히 높이고 있다.
파란색(10%), 빨간색(5%), 초록색(4%)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상승했다. 은색은 2015년 12%에서 지난해 3%로 하락하며 예외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업계는 이러한 변화가 소비자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확장된 자아’로 여겨지면서, 소비자들은 외장 컬러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표현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예쁜 색을 고르지 않는다”며 “브랜드 철학과 연결된 컬러가 더 높은 선호를 얻고, 이는 곧 재판매 가치로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외장 색상이 차량 감가율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이 되고 있는 지금, 한국 시장의 이례적인 색상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업계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다.